전원생활7월-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Contents
01. 전원생활 2025년 07월호(통권)
02.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찾아서
03. 갭이어족 김진영 씨
04. 시골 들풀 수업
05. 국내에서 찾은 일본 감성 ‘니지모리스튜디오’
06. 촌(村)스러운 여름방학, 연천 푸르내마을
07. 로컬 탐구_단양 그림 같은 자연 속으로
08. 포토 에세이 아직도 소가 밭을 간다
09. 그 나라 그 도시 스위스 중부 알프스 여행
10. 섬, 그곳에서 통영 연화도
11. 家家호호 강원 원주 ‘오아재’
12. 인테리어 레시피 화사한 신혼집으로 재탄생한오래된 빌라
13. 가드너의 정원 고현경·이재호의‘단밍이네 어린 정원’
14. 꽃의 즐거움 꽃을 물에 띄운 테이블 장식
15. 자연에 산다 양평 대나무 공예가 김보람 씨
16. 귀농귀촌 멘토링 산지연금 제도
17. 김신지의 절기편지 발까지만 찰방찰방 차도충분한 것
18. 문태준의 전원에서 초여름의 살림과 수국
19. 무늬가 있는 삶 사진가 성남훈
20. 지구人터뷰 KBS 〈환경스페셜〉 김가람 PD
21. 나의 반려동물 김소정 씨의 러시안블루
22. 예술가의 방 도자공예가 편예린
23. 계절 농산물 더위 달래는 다디단 수박
24. 자연으로 차린 식탁‘ 베어스덴베이커리’서병주 베이커의로컬푸드 이야기
25. 즐거운 채식 체리 라디치오 샐러드와옥수수 파스타
26. 술이 익는 계절 자두·살구·복숭아 과실주
27. 오늘의 커피 대구 ‘류커피로스터스’
28. 마음 달래는 필사 장정심 ‘빨래터’
29. 9988 전문의 칼럼 관절염
30. 근육 1㎏ 키우기 프로젝트 누워서 하는 중둔근 운동
31. 세금 바로 알기 청년창업 중소기업 세액감면 제도
32. 생활 속 법률 이야기 범죄 가해자가 합의금 일부를미지급했다면!
33. 철학자가 중년에게 욕망을 다스리고우아하게 가난해져라
34. 전원생활 수기 나의 살던 고향은
35. 공연 읽는 시간 뮤지컬 프리다
36. 새책·영화·전시·축제
37. 독자와의 대화, 애독자 퀴즈, 운세
38. 인스타그램으로 보는 이번 호
39. 지난 호를 읽고
40. ‘家家호호’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본격적인 여름 더위는 소서와대서가 있는 7월부터 시작 된다. 7월 7일 무렵의 소서(小)는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머물 무렵 연일 내리는 비로 땅의 열기는 식고 습도는 높은, 말 그대로 작은 더위의 계절을 지나게 된다. 장맛비가 그치면뙤약볕 내리쬐는 큰 더위 대서(大暑)가 7월 24일 쯤 온다.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이 유독 미움을 받는건 바로 이 폭염 때문이다.
"아, 여름 너무 싫어."
함께 걷던 누군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황급히 여름의 귀를 막아주고싶은 심정이 된다. "아니, 다 들리게 왜 그 렇게 말해"라고 항변하면 더 수상해 보일 것이기에 대신 여름의 어원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여름은 왜 여름일까? '열매가 열렸다'고 말할 때 쓰는 '열다' 명사형으로 바꾼 말이 '얼음'이고, 이 단어가 변해 '여름'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유력하다. 여름은 열매가 열리는 계절이자, 그 열매를 키우는 것은 바로 더위다.
자연의 모든것에 '그냥'이란 없다. 열매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봄에 꽃을 피우고 무사히 꽃가루 받이를 했기에 열매가 맺힌 것이다. 식물은 그냥 살지 않는다. 농부가 농작물을 돌보듯 식물은 열매를 키우기 위해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일한다. 뜨거운 볕에 광합성을 하고 물을 듬뿍 마시며 양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복숭아 체리·참외 수박....갖가지 여름 과일은 좋아하면서 더위는 따로 떼어낸 듯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름의 어원에 대한 얘기로 에둘러 말한다. 이것은 열매를 키우는' 더위이자 우리를 살리는 더위라고.
물론 그걸 안다해서 더운 게 안 더워지진 않기에 대서 무렵엔 늘 하는 일이 있다. 캠핑 의자와 읽을 책, 시원한 음료 정도만 챙겨서 근처 계곡에 한나절 다녀오는 것이다.
도심에서는 차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한낮, 계곡에 들어서면 뺨에 닿는바람부터 다르다. "천연 에어컨이 따로없네!"라고 감탄하면서 의자를 놓기에 적당한 자리를 찾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발을 담그면 종아리를 타고 정수리까지 짜릿한 냉기가 번진다. 나중엔 발이 시려와 5분에 한번씩 판판한 돌 위에 꺼내놓아야 할 정도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 여름의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 해마다 반복하는 우리 집안 연례행사일 수밖에. 어느 여름 밤, 거실에서 TV를 보던 남편이 방에 있는 나를 향해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발까지만 차도 충분하다!" 보고 있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말을 전해준 거였다. 돈만 좇으며 살아가는 무한 경쟁 시대의 피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스님이 말했단다. '만족'이 란 단어는 '찰 만(滿)'자에 '발 족(足)'자를 쓰니, 사실 발까지만 차도 충분한 것이라고.
넘쳐야 행복한 줄 아는, 더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몸과 마음이 과열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시원한 말이 있을까. '발까지만 차도 충분하다.' 여름계곡에서 나는 그말이 무엇인지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발목'만큼은 어느정도를 뜻할까? 무엇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그렇지 않은가?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로 생각을 차분히 식히고 싶은 여름이다.
김신지
에세이 작가 작은 더위의 계절 소서에 태어나 초여름을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는 <제철 행복><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게 취미>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