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황인숙-
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