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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ravel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박인환문학관

by 우중래객 2024. 2. 19.

박인환

 

박인환문학관
강원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50

 

 

 

박인환 시인의 시 세계

박인환 시인의 시 세계는 한국전쟁을 분기점으로 두 가지 양상을 띤다.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동인을 결성한 뒤 양병식, 김수영 등과 함께 모더니즘 운동을 추구하면서 진정한 민족 국가 건설을 지향한 해방기의 시 세계와, 전쟁이 가져온 폭력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상실감과 비애감을 노래한 한국전쟁 이후의 시 세계로 구성되는 것이다.

해방기에는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남풍」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약소국가의 민중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에 적극적으로 항전해 민족 해방을 이루기를 응원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 성조기가 퍼덕이는”(「인천항」) 해방기의 인천항 모습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아온 홍콩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경계한 것도 같은 인식으로 볼 수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55년 『선시집』(산호장)을 간행했는데, 시집의 후기에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 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라고 토로했듯이 한국전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의 아픔과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 의지를 가지고 시를 썼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사회적 존재로서 의지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행동이라는 신념으로 동시대의 시인들 중에서 가장 전위적인 위치에 섰던 것이다. 그의 불후의 명작인 「목마와 숙녀」, 「검은 강」, 「세월이 가면」 등이 그 산물이다.

 

 

 

 

박인환 시인과 인제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 인제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로 이사한 박인환은 “어질고 가난한 내 고향 사람”들의 “근성을 나는 배반 할 수가 없다”(「원시림에 새소리, 금강은 국토의 자랑」)라고 밝혔듯이 뿌리 의식이 강했다.

1년에 한두 번 씩 마을에 순회 공연극단, 학교운동회, 전근 가는 담임 선생님을 20리 길까지 전송한 일, 애국가를 가르쳐준 목사님 등 많은 추억을 품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인정 많은 고향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가난한 고장/인제/봄이여/빨리 오거라.”(「인제」)라고 노래한데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박인환 시인의 ‘가난’인식은 주목된다.

많은 독자들은 박인환 시인을 명동의 거리를 주름잡은 멋쟁이라고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했다. 그렇지만 그는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멋있는 시인으로 살았다. 그가 추구한 멋있는 삶이란 대단한 일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인정 많은 고향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가난 때문에 31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에 주눅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 가난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