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홀로 술마시며
봄바람은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물과 나무는 봄빛에 무성하구나
밝은 해는 푸른 풀을 비추고
떨어진 꽃은 흩어져 날리는구나
외로운 구름은 빈 산을 돌고
뭇 새들은 모두가 둥지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저 갈 곳이 있는데
내 인생은 의지할 곳 하나 없구나
이 바위 위의 달을 바라보며
오래 취해 봄날 꽃다운 풀을 보며 노래하네
東風扇淑氣 / 동풍선숙기 水木榮春暉 / 수목영춘휘
白日照綠草 / 백일조녹초 落花散且飛 / 낙화산차비
孤雲還空山 / 고운환공산 衆鳥各已歸 / 중조각이귀
彼物皆有托 / 피물개유탁 吾生獨無依 / 오생독무의
對此石上月 / 대차석상월 長醉歌芳菲 / 장취가방비
- 李白 -
꽃 사이에서 한 동이 술을,
친구 없이 혼자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을 청하니,
달과 그림자와 셋이 되었네.
달은 술을 마시지 못하니,
그림자만 나를 따라 마신다.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이 즐거움 봄까지 미치리라.
내 노래에 달도 따라다니고,
내 춤에 그림자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겁지만,
취한 뒤에는 각자 흩어진다.
영원히 맺은 담담한 우정,
저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기를.
花間一壺酒 / 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 / 독작무상친
擧杯邀明月 / 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 / 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 / 월기부해음 影徒隨我身 / 영도수아신
暫伴月將影 / 잠반월장영 行樂須及春 / 항낙수급춘
我歌月徘徊 / 아가월배회 我舞影零亂 / 아무영령난
醒時同交歡 / 성시동교환 醉後各分散 / 취후각분산
永結無情遊 / 영결무정유 相期邈雲漢 / 상기막운한
- 李白 -
「춘일독작」과 「월하독작」은 단순한 음주시가 아닌,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독과 그 초월에 관한 이백의 심오한 존재론적 탐구이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고립된 의식이 어떻게 자기 초월을 이루어내는지, 그 미학적 승화의 과정을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춘일독작」에서 이백은 봄의 생동하는 풍경과 인간 존재의 고립을 날카로운 대비로 포착한다. 동풍이 불어오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활기찬 풍경 속에서, 의식은 오히려 자신의 존재론적 무의지처(無依支處)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꽃잎은 흩날리고 외로운 구름은 빈 산으로 돌아가며, 새들조차 자신의 둥지로 귀환하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오직 이백만이 돌아갈 곳 없는 존재로 남겨진다.
가장 심오한 지점은 이러한 근원적 고독을 슬픔이나 절망으로 치환하지 않고, 오히려 "석상월(石上月)" - 돌 위에 비친 달빛 - 이라는 자연의 순간적 현현과 교감하며 미학적 승화를 이루어낸다는 데 있다. 시인은 자신의 무의지처를 인정하면서도, 술과 달빛, 그리고 노래를 통해 그 고독을 우주적 소통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단순한 위안이 아닌, 인간 실존의 근원적 조건을 직시하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이백 특유의 형이상학적 도전이다.
「월하독작」에서는 고독의 문제가 보다 역설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인은 벗 없는 고독을 달과 그림자라는 비인격적 존재와의 가상적 교유로 변용시킨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꽃 사이에 술 한 병을 두고, 홀로 마시니 친구 없네)라는 고독의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여,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초대함으로써 "暫伴月將影"(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 삼네)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창조해낸다.
시의 탁월함은 그 상상적 교유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그 한계와 비극성까지도 인식하는 데 있다.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단지 시인의 움직임을 모방할 뿐이라는 인식은, 인간 소통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통찰로 읽힌다. 그럼에도 시인은 "行樂須及春"(즐거움은 봄날에 누려야 하네)라는 순간의 미학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相期邈雲漢"(저 멀리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세)라는 우주적 차원의 초월적 만남을 꿈꾼다.
「춘일독작」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고립된 의식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면, 「월하독작」은 그 고립된 의식이 어떻게 상상력을 통해 우주적 소통의 가능성을 창조해내는지를 보여준다. 두 시 모두에서 술은 단순한 도피의 매개가 아니라, 의식의 경계를 확장하여 자아와 우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유동화하는 형이상학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백의 진정한 천재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비관이나 허무가 아닌 미학적 초월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인간 의식의 고립을 인정하면서도, 그 고립된 의식이 어떻게 자연, 우주, 그리고 상상적 타자와의 교감을 통해 자기 초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