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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 아래 땅을 밟고, 바람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일부가 된다
  • 전원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되고, 저녁은 별빛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여유와 행복이다
  • 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었다. 인생을 의식적으로 살고 싶었다
여행 travel

흥원창에서 목계나루까지 - 남한강 자전거 여행

by 우중래객 2025. 9. 17.

남한강을 따라 떠나는 힐링 자전거 여행 - 흥원창에서 목계나루터 신경림 시비까지

 

9월의 첫 주, 아침 공기는 어느새 가을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지만 해가 높이 뜨면 여전히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머물러 있는 그런 애매한 계절의 경계에서, 흥원창을 출발점으로 삼아 목계나루에서 끝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새벽 안개가 남한강 위에 살짝 걸려 있던 그 순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국토종주 코스의 한 구간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강변에는 고요함이 흘렀고, 물결 위로 반짝이는 햇살은 마치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뿌려놓은 듯 눈부셨다.

바람은 얼굴을 스치며 계절의 변화를 속삭였고, 두 바퀴 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은 일상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흥원창에서 목계나루까지 이어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자연,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출발점인 흥원창(興元倉)은 횡성에서 시작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원주를 포함한 강원도 일대의 세곡을 모아 한양으로 보내던 중요한 조창(漕倉)이었다. 고려 13조창, 조선 9조창 중 하나로 운영되었을 만큼 그 규모와 중요성이 대단했다. 한 번에 200석의 곡식을 싣는 평저선 21척이 이곳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조운 기능이 쇠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흥원창은 이제 아름다운 노을과 자전거길로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원주시에서는 이곳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 국가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현재의 아름다움을 더해 미래의 명소로 거듭나는 흥원창에서, 강물이 실어 나르던 쌀 대신 자전거에 몸을 싣고 힘찬 페달링을 시작했다.

 

 
 
 

 

남한강 종주 자전거길을 따라서

 

흥원창에서 출발하여 부론면을 지나 뒤로하고 남한강 종주 자전거 도로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국토종주 4대강 자전거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손꼽힌다. 강을 끼고 달리는 자전거길은 완만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풍경을 선사한다.

 

부론면을 지나면서 만나는 강변의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봄에는 유채꽃이, 여름에는 푸른 녹음이, 가을에는 황금빛 억새가, 겨울에는 설경이 라이더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간중간 설치된 휴게시설에서 잠시 쉬며 강바람을 맞고 있으면,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남한강의 역사와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 이 강을 통해 문물이 오가고 사람들이 소통했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의 자전거 도로가 과거의 수운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흥원창을 출발해 남한강 종주 자전거 도로를 따라 부론면의 고즈넉한 풍경을 지나 달리다 보면 이내 비내섬에 닿는다. 억새와 갈대를 베어내는 섬이라는 의미에서 비내섬이라 불린다는 이름의 유래처럼, 이곳은 억새와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을철이면 그 이름처럼 온 섬이 은빛 물결로 일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비내교를 건너 섬에 들어서면 갈대 사이로 구불구불 난 작은 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무심히 서 있는 버드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운치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남한강의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 철새들의 합창이 어우러져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실감하게 한다.

 

최근 들어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한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비내섬은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국토종주 자전거길 남한강 구간의 인증센터가 있어 자전거 라이더들에게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과 역사가 만나는 목계나루터

 

1시간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목계나루터다.

목계나루는 1930년대 충북선 철도가 놓이기 이전까지 남한강 수운 물류교역의 중심지였다. 수곡선 20여 척이 서로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으니, 당시 이곳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쌀이나 소금을 실은 배가 수시로 드나들고, 배가 들어와 강변장이 서면 각지에서 몰려든 장꾼들과 놀이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인천항에서 소금, 건어물, 젓갈류, 생활필수품을 싣고 온 황포돛배가 수십 척씩 붐볐다. 이런 물건들은 충청도와 강원도, 경상도의 문경과 상주까지 팔려나갔고, 뱃일하는 인부만도 500여 명이나 되었다니 그 활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목계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목계나루터'라는 커다란 입석과 함께,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가 서 있다. 시인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마도 어린 시절 목계장터의 추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비 앞에 서서 '목계장터'에 담긴 서민들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지금도 이곳을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흥원창에서 목계나루터까지의 자전거 라이딩은 남한강을 따라 흐르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우리의 삶과 문화를 만나며,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선시대 조운의 거점이었던 흥원창에서 시작해, 자연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비내섬을 지나, 문학과 역사가 만나는 목계나루터에서 마무리되는 이 코스는 몸과 마음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한강 종주 자전거길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평탄한 코스이면서도,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특별한 길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역사,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을 선사하는 이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