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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by 우중래객 2022. 6. 23.

 

 

 

 

길모퉁이를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햇빛에 꽃잎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

기억날 때가 있다

어딘가 두고 온 생이 있다는 것

하늘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어떡하지 그만 깜빡 잊고

여기서 이렇게 올망졸망

나팔꽃 씨앗 같은 아이들 낳아버렸는데

갈 수 없는 당신 집 불쑥 생각날 때가 있다

햇빛이 눈부셔 자꾸만 눈물이 날 때

갑자기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

노을이 붕붕 울어댈 때

순간, 불현듯, 화들짝

지금 이 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억과 공간의 갈피가 접혔다 펴지는 순간

그 속에 살던 썰물 같은 당신의 숨소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

권대웅/당신과 살던 집